학업을 마치고 PGWP(졸업 후 워크 퍼밋)를 신청하던 시기는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때였습니다. ‘취업이 안 되면 어쩌지?’, ‘어떤 업종을 선택해야 영주권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에 밤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졸업, 그리고 5개월의 기다림
학업은 2020년 겨울에 마쳤습니다. 4주간의 인턴십 과정이 있어서 실질적인 졸업은 1월 말. 졸업 직후 PGWP(Post-Graduation Work Permit)를 신청했습니다. 보통 1~2개월이면 나온다고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이민국 처리가 밀리면서 무려 5개월을 기다렸습니다. PGWP가 손에 들어온 건 그해 7월이었습니다.
그 5개월 동안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캐나다 경력이 한 줄도 없는 상태에서 건설업 취업 준비를 시작했고, 워크 퍼밋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통역 등 할 수 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당시 최저 임금이 시간당 11달러 수준이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생활비를 버텼습니다.
코로나가 위기만 가져온 건 아니었습니다. 정부가 학생들의 취업난을 감안해 한시적으로 PGWP 기간을 연장해줬고, 운 좋게 저는 3년짜리 퍼밋을 받게 됐습니다. 그 3년이 영주권을 준비하는 데 결정적인 시간이 됩니다.
가족 재회 — 2021년 5월
2021년 5월, 드디어 아내와 아이가 캐나다에 왔습니다. 홍콩에서 캐나다까지의 비행 시간은 길고, 코로나 시국의 이동은 더 고됩니다. 공항에서 처음 만난 아이는 몹시 지쳐 보였습니다. 기대했던 극적인 재회는 아니었고, 솔직히 그 순간이 조금 슬펐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아이가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지난 약 2년이 한꺼번에 정리되는 느낌이랄까요. 가족이 합류하면서 기숙사에서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위니펙에서의 첫 렌트는 1베드룸 1욕실, 월 $1,250이었습니다. 이후 아이가 자라면서 2베드룸 2욕실($1,570)로 옮겼습니다. 지금 BC주 렌트 시세와 비교하면 꿈같은 가격이지만, 당시엔 그것도 빠듯했습니다.
전화위복: 3년의 워크 퍼밋
코로나 덕분에 얻은 예상치 못한 혜택이 하나 있었습니다. 정부가 학생들의 취업난을 고려해 PGWP 기간을 한시적으로 연장해줬고, 저는 3년짜리 퍼밋을 받게 됐습니다. 영주권 신청까지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셈이었습니다.
첫 취업 — Indeed에서 3개월 후 연락
취업 준비는 졸업 직후부터 시작해 약 6개월이 걸렸습니다. Indeed에 이력서를 올리고 PC(Project Coordinator) 포지션을 집중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연락이 오지 않는 날이 더 많았고, 지원한 지 2~3주 만에 답장이 오기도 했지만 길게는 3개월이 지나서야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첫 직장은 소규모 CM(Construction Management) 전문 회사였습니다. Indeed에 이력서를 넣은 지 3개월 만에 연락이 왔고, 면접을 봤습니다. 면접에서 특별한 전략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아는 건 성실하게 답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홍콩에서 쌓은 실무 경험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게 통했던 것 같습니다.
2021년 당시 마니토바주 PC 평균 연봉 수준으로 시작했습니다. 최저 임금을 받으며 버티던 시절을 생각하면, 첫 월급날은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QSR과 Cannabis — 위니펙에서 쌓은 현장 경험
주로 맡은 프로젝트는 QSR(Quick Service Restaurant) Tenant Improvement와 Cannabis 매장 시공이었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PC 입장에서는 배울 게 많은 프로젝트 유형이었습니다. 짧은 공사 기간 안에 다수의 하청업체를 조율하고, 캐나다식 계약 문서와 퍼밋 프로세스를 직접 다루면서 실무 감각을 빠르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위니펙 생활 — 커뮤니티와 정보
위니펙에도 한국인 커뮤니티와 홍콩인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아내도 주로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얻었습니다. 온라인에서 알게 된 한국분 한 분이 있는데, 그분과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직접 만나 교류하는 오프라인 커뮤니티보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 연결되는 온라인 관계가 이민 초기에는 더 실용적이었습니다.
영주권 취득
취업 오퍼를 받자마자 MPNP(Manitoba Provincial Nominee Program)를 신청했습니다. 영주권을 받기까지 1년 반이 조금 넘게 걸렸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캐나다 경력을 쌓는 동안 서류가 처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줬습니다.
회사의 변화, 그리고 이직을 결심하다
직장 생활은 한동안 순탄했습니다. 하지만 1년 반 정도 지나자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주력은 프랜차이즈 TI(Tenant Improvement) 프로젝트였는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가맹점주들이 신규 오픈이나 리모델링을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수주가 눈에 띄게 줄었고, 회사도 인원을 감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다가 잘리는 것보다, 먼저 움직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BC주를 선택한 이유
이직을 생각하면서 BC주를 처음 가봤습니다. 첫 인상은 예상보다 훨씬 아시아계 주민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홍콩 사람이다 보니, 위니펙보다 BC주에서 훨씬 수월하게 취업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아시아인들이 많다는 건 아내에게도, 저에게도 심리적으로 편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아내 쪽 이모가 BC주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모의 아들이 저처럼 건설업에서 일했는데(GC), 그 아들 친구를 통해 BC주의 새로운 회사에 연결이 됐습니다. 아는 사람의 소개가 아니었다면 시작하기 훨씬 어려웠을 이직이었습니다.
위니펙에서의 시간은 짧았지만, 캐나다 건설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토대가 없었다면 BC주에서 $100M 규모 프로젝트에 투입됐을 때 훨씬 더 힘들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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