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을 마치고 PGWP(졸업 후 워크 퍼밋)를 신청하던 시기는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때였습니다. ‘취업이 안 되면 어쩌지?’, ‘어떤 업종을 선택해야 영주권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하는 질문들에 밤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다행히 2021년, 홍콩에 있던 아내와 아이가 캐나다로 오면서 드디어 가족이 상봉하게 되었습니다. 핏덩이였던 아이를 두고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전화위복: 1년의 공부, 3년의 워크 퍼밋
코로나가 위기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부는 학생들의 취업난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PGWP 기간을 연장해 주었고, 운 좋게 저도 3년짜리 퍼밋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선 ‘캐나다 경력’부터 쌓자는 생각으로 통역 업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2021년 여름, 드디어 전공과 경력을 살려 캐나다 건설업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한국 엔지니어링 회사에서의 플랜트 건설 경험이 큰 자신감이 되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현지 회사에 채용되었고, 처음부터 배운다는 낮은 자세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Project Coordinator)로서 상업용 인테리어 공사 경험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순탄했던 생활, 그리고 다시 찾아온 변화
직장 생활은 순탄했습니다. 출퇴근은 정확했고 급여도 밀리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이후 멈췄던 프로젝트들이 재개되면서 회사가 성장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1년 반 정도 지나자 소규모 비즈니스였던 회사의 수주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이 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저는 다시 한번 결단이 필요함을 직감했습니다.
캐나다 건설업, 특히 제너럴 콘트랙터 회사에서의 첫 직장생활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했습니다. 단순히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것뿐 아니라, 현장 용어부터 서류 형식, 입찰 프로세스, 심지어 캐나다 특유의 건설 계약 구조(CCDC)까지 새롭게 배워야 했습니다. 처음 몇 달은 회의 때마다 머릿속에서 실시간 번역이 돌아갔고, 직장 동료들이 빠르게 주고받는 이메일과 전화 통화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민자라는 핸디캡은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캐나다 건설업에서 살아남는 법
캐나다 건설 현장에서 신뢰를 쌓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명확한 커뮤니케이션과 꼼꼼한 서류 관리였습니다. 말이 조금 서툴더라도 이메일로 내용을 정확하게 정리하고 전달하는 능력이 상사와 클라이언트의 신뢰를 얻는 데 결정적이었습니다. 또한 영주권 신청 과정에서도 취업 경험이 직접적인 포인트로 작용했기에, 한 직장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위니펙에서의 시간은 짧았지만, 캐나다 건설업 전반에 대한 감을 잡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이민 초기 어렵고 불확실했던 그 시간들이 오히려 저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캐나다 건설업은 이민자에게 결코 쉬운 업계가 아닙니다. 하지만 자격증과 경험을 갖추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분명 기회는 찾아옵니다. 다음 편에서는 위니펙을 떠나 BC주로 이직하게 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 이전 편 보기: [제1편] 호주와 홍콩을 거쳐 위니펙으로: 나의 역마살과 캐나다 이민의 시작
📌 다음 편 보기: [제3편] BC주로의 이직, 그리고 캐나다 이민자의 끝없는 고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