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호주와 홍콩을 거쳐 위니펙으로: 나의 역마살과 캐나다 이민의 시작

사주에서 말하는 ‘역마살’이 27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시작은 호주 워킹홀리데이였습니다. 그곳에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고, 아내가 홍콩 사람인 인연으로 30대 중반에는 홍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홍콩에서의 생활도 나쁘지…

사주에서 말하는 ‘역마살’이 27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시작은 호주 워킹홀리데이였습니다. 그곳에서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고, 아내가 홍콩 사람인 인연으로 30대 중반에는 홍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홍콩에서의 생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국과의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제3국으로의 이민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갓 태어난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결단을 내리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렇게 저희 가족의 행선지는 캐나다가 되었습니다.

배수진을 치고 떠난 위니펙행

2019년, 홍콩 생활을 정리하고 홀로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영주권 취득(PNP)을 위해 학업 후 관련 직종 취업이라는 확실한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제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큰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영어도, 경험도, 자금도 넉넉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직장 경험과 자격증, 해외 근무 이력을 믿고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roject Management) 과정이 있는 The University of Winnipeg에 등록했습니다. 아이엘츠 점수가 부족해 어학 과정(English Pathway)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그때는 희망이 더 컸습니다.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

외국인 친구들과 교류하며 인맥을 쌓겠다는 당찬 포부는 본과 진학 직후 터진 코로나19로 인해 산산조각 났습니다.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학교생활은 어느덧 외로운 자취 생활이 되어버렸습니다. 인생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더군요.

졸업이 다가올수록 불안함은 커졌습니다. 많은 회사가 문을 닫았고, 학생 퍼밋에서 워크 퍼밋으로 전환되는 시기적 압박은 군대 시절 전역 날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왔습니다.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된 이후 2년이라는 시간은 고요하고도 고독한 시간이었습니다. 홀로 방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며 영어 강의를 듣고, 과제를 제출하며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마냥 낭비는 아니었습니다. 영어 쓰기 실력이 늘었고, 캐나다 건설업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에 대해 깊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위니펙의 길고 혹독한 겨울도 그 자체로 하나의 적응 과정이었습니다. 영하 30~4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 아무도 없는 고요한 겨울 도심. 처음에는 낯설고 두려웠지만, 차츰 그것이 위니펙의 일상임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

많은 분들이 “왜 캐나다냐”고 묻습니다. 홍콩에서 캐나다를 선택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영어권 나라 중에서 이민에 상대적으로 열려 있는 정책. 둘째, 치안과 복지 수준이 높은 생활 환경. 셋째, 한국과 시간대가 그나마 가까운 점이었습니다. 특히 Manitoba주의 PNP(Provincial Nominee Program)는 유학생이 졸업 후 일정 직종에 취업하면 영주권 신청이 가능해, “학업 → 취업 → 영주권”이라는 명확한 로드맵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이민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떠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부족한 영어, 낯선 나라, 가족과의 이별. 하지만 한 발짝씩 내딛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지는 날이 옵니다. 자금이 부족하다면 더 적은 것으로 시작하면 되고, 영어가 서툴다면 글로 보완하면 됩니다. 제 이야기가 캐나다 이민을 고민하는 분들께 작은 실마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 다음 편 보기: [제2편] 기회와 도전: 위니펙에서의 첫 직장과 캐나다 건설업 입문

📌 시리즈 전체 보기: [제3편] BC주로의 이직, 그리고 캐나다 이민자의 끝없는 고민까지 이어지는 캐나다 이민 이야기를 모두 읽어보세요.